2005/01/11
글 / 정순욱
넥스트가 숭배화되기 시작한 것은 "껍질의 파괴"가 수록되어 있는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뒤부터 이다. 데뷔작은 소프트락, 테크노 형식이 주를 이뤘고 질좋은 가사의 곡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은 거두었다. 하지만 그룹음악으로서의 이미지는 다소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예상을 뒤집고 넥스트는 본격 그룹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그 시발점은 이른바 복잡한 악곡이 웅장미를 자랑하는 두 번째 앨범에서 가시화된다.
메틀릭한 리프, 드림씨어터류의 심포닉한 악곡, 그리고 아트락 전성기를 연상케하는 심도있는 서정성은 넥스트를 당대 최고의 밴드로 올려 놓았다. 물론 똑같이 현란한 사운드를 가진 음악을 내걸어도 넥스트만이 한국에서 통하는 이유는 신해철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말하자면 한국의 음악팬들은 서구음악을 추종하면서도 그들에게 내세울 만한 최상급의 괜찮은 뮤지션(그룹)과 음반을 갖기를 원했고, 그런 소망의 실현 가능성을 넥스트의 두 번째 앨범에서 미약하게나마 발견했던 것이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호투할 때 한국인들이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을 넥스트의 앨범에서 발견하려 했다고 비약(?)시킬 수도 있겠다.
결국 넥스트가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우리도 이런 뮤지션을 가질 수 있다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늘 이런 허접한 사운드와 구리구리한 악곡 밖에 만들지 못하는가라는 패배의식을 씻어준 밴드가 넥스트이다. 물론 내 개인적으론 크래쉬를 좀 더 높이 평가하고 싶지만 그들의 음악은 너무 하드해서 소비층이 일부에 머무르고 마는 한계를 가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넥스트의 음악적 여정은 결국 네 번째 앨범인 [Lazenca (A Space Rock Opera)]에서 극대화된다. 그 앨범은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입한 앨범임과 동시에 홀스트의 혹성을 재구성함으로 인해 이른바 심포닉한 음악의 절정을 보여 주었다. 이른바 주류 락, 메틀음악에 반하는 고급스러운 음악을 그런 스타일의 음악들에서 찾아내는 팬들의 속성을 정확히 짚어낸 앨범임과 동시에 그런 스타일과 종말을 고하는 작품이 바로 네 번째 앨범이다.
넥스트는 왜 해체를 했던가? 결국 그런 스타일의 음악만을 원하는 팬들의 요구에 이대로는 부응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왜? 그들은 음악적인 두뇌와 육체만을 놓고 봐도 여러 수재들이 모인 드림씨어터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류의 음악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갈수록 위축되어 가는 음악시장에서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지속적으로 양산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넥스트의 팬들은 미래에도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누가 자신할 것인가? 결국 작업방식의 리모델링이 필요한 시점임을 그도 느꼈을 것이고 음악적으로도 뭔가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은 욕망이 넥스트를 해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여러 음악적 시도들(대부분 실패로 끝났지만)을 거친후 신해철이 넥스트의 이름을 내세우고 다시 안착한 것은 결국 저자본의, 일명 몸으로 때우는 제작방식이다. 비트겐슈타인에서 약 300만원 정도의 예산으로 레코딩을 해치웠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넥스트의 새로운 작업방식은 아무도 돈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 새로운 시대의 팬들에 대응하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전략이며 시니컬한 냉소이다. "난 이 정도 수준으로 만들어 줄테니 살 사람은 사고 말 사람은 말아라"라는 그들만의 표현이다. 밴드에게 기타줄 살 돈조차 제공하지 않으면서 말만 씹어대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도 과분하지 않냐라는 그들 만의 반격으로도 볼 수 있겠다.
신보의 앨범 제목이나 곡의 내용에서 비꼬고 뒤트는 가사가 유난히 노골화 된 것은 정부가 바뀌면서 사회 참여적인 위치에서 겪었던 경험이 많이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밴드의 작업방식이 바뀐 것도 좀더 민주적인 마인드를 많이 가지게 된, 진짜 밴드 식으로 뭔가를 협력해서 해보고 싶은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이를테면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1인 독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고, 힘있는 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일개 대통령쯤은 우습게 끌어내릴 수 있는 그런 나라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인식한 결과인 셈이다.
결국 넥스트의 신보는 이미 떠나버린 팬들에게 던지는 손수건도 아니고, 그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찌라시도 아니다. 이 앨범에서 팬들과의 줄타기는 없다. 그냥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세상에 던졌을 뿐이다. 어차피 CD판매가 밴드수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시대는 지났는데 뭐하러 예전처럼 온갖 폼 잡으며 애걸복걸, 문화 예술회관식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가?
요즘같은 시대에 음반은 어차피 살 사람만 사고 안 살 사람은 죽어도 안 산다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버린 넥스트. [개한민국]은 그런 이 시대에게 던지는 그들 만의 비아냥이다. 듣고 싶은 사람 들만 우리 음악을 들어라!
이런 스타일의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출처 www.chang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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