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7일 화요일

포켓몬스터'는 어떻게 탄생했나

출처 http://www.ebuzz.co.kr/content/buzz_view.html?uid=86836


포켓몬스터는 중학생 시절부터 게임광으로 유명했던 타지리 사토시로부터 시작됐다. 1965년 도쿄의 외곽 지역인 마니치에서 태어난 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보는 순간 완전히 게임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즐겼다. 부모님이 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니라고 하자 오락실과 가장 가까운 학원을 등록할 정도로 게임에 미쳐있었다. 게임 실력도 출중해 오락실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16살이 되던 해에 마침 세가에서 게임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는데 여기에 응모한 타지리 사토시는 대상을 받게 된다. 이후 게임 세계에 더욱 빠져든 그는 다음 해에 게임 잡지 게임프리크(GAME PHREAK)를 직접 창간한다.

1983년은 닌텐도가 패미컴을 발매한 해로 게임이 본격적인 산업으로 인정받기 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게임 잡지는 생각도 못하던 시절에 17살의 타지리 사토시는 직접 잡지를 창간하고 게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게임프리크는 정식 게임 잡지라기보다는 아마추어들의 동인지와 비슷했다. 타지리 사토시는 당시 인기있던 스페이스 인베이더나 돈키콩과 같은 인기 게임 공략이나 숨겨진 비법들을 직접 손으로 쓴 후 이를 복사하고 스테이플러로 찍어 잡지를 만들었다.



겉모양은 차마 잡지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조악했지만 내용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300엔에 팔았던 이 잡지는 한때 만권씩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오늘날 일본 게임 잡지의 원조로 인정받고 있다.

원래 타지리 사토시의 부모는 그가 안정된 직장을 가지기 원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타지리 사토시는 더욱 게임에 빠져들었고 공부와는 점점 멀어졌다. 결국 전문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패미통과 같은 게임 전문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게임에 대한 글을 계속 쓰면서 어느덧 재미있는 게임과 그렇지 못한 게임을 구분할 수 있는 직관력을 가지게 됐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게임을 제작하면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본격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한 그는 2년간의 노력 끝에 겨우 게임을 제작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게 된다.

타지리 사토시는 게임 작가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인맥을 총동원해 패미컴 게임개발을 위한 팀을 구성했다. 그가 게임을 제작한 방식은 당시로 보면 획기적이었다. 당시 패미컴으로 게임 개발을 하려면 닌텐도에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타지리 사토시는 프리랜서 방식으로 팀원들을 모은 후 게임을 먼저 만들었고 그 후 유통사를 찾았다. 이는 마치 영화와 비슷한 형태의 제작방식으로 화제가 됐다.

타지리 사토시가 만든 게임은 1년 간의 제작 끝에 만들어졌다. 쿠인티라고 이름 붙여진 이 게임은 남코를 통해 발매된다. 쿠인티는 20만개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고 타지리 사토시는 5,000만엔을 벌게 된다. 이 돈을 가지고 타지리 사토시는 아예 정식으로 게임 회사를 창업하는데 회사 이름은 그가 창간한 잡지명을 따라서 게임프리크로 결정했다.

닌텐도는 1989년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를 출시했다. 테트리스의 인기 덕분에 게임보이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테트리스가 인기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2개의 게임보이를 통신케이블로 연결해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것이었다. 타지리 사토시는 통신케이블로 많은 사람들이 테트리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불현듯 게임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나오기 전 타지리 사토시는 동네주변 주차장과 숲속을 돌아다니면서 잠자리 같은 곤충을 채집하면서 놀았다. 타지리 사토시는 제대로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 곤충의 습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어느덧 친구들에게 곤충박사로 불리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렇듯 그는 곤충을 보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친구들과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더 이상 동네에서 곤충을 채집할 수 없게 됐다.

타지리 사토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향수를 게임으로 재현보고자 했다. 도시화로 인해 곤충 채집의 즐거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즐거웠던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통신 케이블을 통해 캐릭터와 아이템을 교환하는 개념의 포켓몬스터였다. 참고로 처음에 게임 이름은 캡슐몬스터였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평소부터 친하게 지냈던 이시하라 츠네카츠에게 들려주었다. 둘의 인연은 게임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던 프로듀서 이시하라 츠네카츠가 일본에서 가장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던 중 타와지리 사토시를 소개 받으면서 시작된다.

게임 기판을 수집하는 게 취미였던 타와지리 사토시는 70년대와 80년대에 발매한 대부분의 게임 기판을 가지고 있었고 게임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는데 이에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타지리 사토시 역시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자 텔레비전 업계에서 유명인사로 통하는 이시하라 츠네카츠가 진지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주자 호감을 느끼고 이후 계속 해서 교류하게 된다.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은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에이프라는 회사에 타지리 사토시를 소개시켜준다. APE는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앞으로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가 고갈될 수 있으니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해서 독창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창업한 회사였다.

에이프 사장은 광고 천재로 유명한 이토이 시게사토였는데 이시하라 츠네카츠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1990년 이시하라 츠네카츠의 소개로 타와자리 사토시는 APE를 직접 방문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한다. 마침 에이프에는 닌텐도에서 파견 나온 카와구치 다카시가 근무 중이었는데 그는 이 아이디어를 닌텐도 본사에 보고한다. 타지리 사토시의 아이디어가 마음에든 닌텐도는 전격적으로 개발자금을 투자하기로 한다.

처음 계약할 당시에는 1991년까지 닌텐도에 게임을 납품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게임으로 구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게임보이가 가지는 성능의 한계도 있었지만 게임 개발을 하면서 타지리 사토시의 욕심도 더욱 커졌다. 당초 기획과는 다른 아이디어들이 계속해서 추가되며 게임 제작도 계속 지연됐다. 그러자 직원들이 하나 둘 회사를 그만두기 시작했다.

이때 이사하라 츠네카츠는 포켓몬스터 개발에 모든 걸 올인하지 말고 머리도 식힐 겸 다른 쉬운 게임을 먼저 개발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다. 당시 회사 개발자금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포켓몬스터 완성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타지리 사토시는 포켓몬스터 제작을 중지하고 닌텐도로부터 제안 받은 여러 게임을 하청 형태로 개발해준다.

이때 그가 개발한 게임이 요시아일랜드와 와리오 마리오였다. 특히 요시아일랜드는 해외에서 게임이 많이 팔리면 개런티를 더 받기로 계약했다. 그런데 요시아일랜드가 해외에서 큰 히트를 한 덕분에 회사는 풍부한 자금을 확보하게 되었다. 덕분에 타지리 사토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고 또한 여러 게임을 만들며 회사의 개발력도 향상시키는 등 제작중지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돌아왔다.

한편 이런 저런 사정으로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던 에이프가 사실상 폐쇄되자 회사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던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크리쳐즈를 창업한다. 그리고 직접 자신이 프로듀서가 되어 직접 포켓몬스터를 챙기기 시작한다.

사실 타지리 사토시는 여러 번 포켓몬스터 제작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포켓몬스터를 계속 개발해주도록 용기를 주고 지지했던 사람이 이시하라 츠네카츠였다. 특히 이시하라 츠네카츠는 카드 게임에 조예가 깊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포켓몬스터에 다양하고 값진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실제로 포켓몬스터가 제작중지된 상태에서 이시하라 츠네카츠가 제시한 게임아이디어 덕분에 다시 프로젝트가 살아날 정도였다.

포켓몬스터 제작이 재개된 후 10명의 개발자들은 한 사람이 된 것처럼 의기투합하게 된다. 나중에 포켓몬스터의 성공 요인은 10명의 개발자가 모두 같은 비전을 한마음으로 품었기 때문이라고 밝혀질 정도로 하나가 되어 열정적으로 게임을 개발한다.

다시 게임 제작이 시작된 후 포켓몬스터는 초기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갔다. 원래 포켓몬스터는 전투위주의 게임이었지만 나중에는 150마리의 몬스터를 수집해 도감을 완성한다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또한 수집된 몬스터는 애완동물의 이미지였지만 나중에는 친구와 동료의 이미지로 바뀌었고 스토리도 덩달아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로 수정됐다.

고객들이 몬스터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더 나타낼 수 있도록 수집한 몬스터의 이름을 바꿀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나중에 타지리 사토시는 포켓몬스터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이는 팀원들이 함께 만든 게임이라고 밝힐 정도로 팀원 간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명작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많은 곡절을 겪은 끝에 포켓몬스터는 1995년 겨우 완성된다. 원래 포켓몬스터는 여름에 발매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로써는 새로운 형태의 대작 게임이었던 관계로 예상치 못한 오류들이 대거 발견됐다. 오류를 찾고 수정하는 데만 몇 개월의 시간이 더 걸렸다. 결국 포켓몬스터는 1996년 2월 27일에야 겨우 발매된다.

처음 닌텐도는 게임의 성공을 확신하고 텔레비전 광고를 집중적으로 방영하는 등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초기 포켓몬스터의 성적은 단 7만 5,000장의 주문을 받을 정도로 저조했다.

그러나 다른 게임과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판매량이 늘어났다. 이렇게 게임의 인기가 늘어난 건 일본의 인기 만화잡지인 코로코로코믹스에 포켓몬스터 만화가 연재됐기 때문이다. 이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치밀한 미디어믹스 전략의 결과였다.



더 보기 http://www.ebuzz.co.kr/content/buzz_view.html?uid=86836#ixzz17OGhu1qq

// 포켓몬스터를 하면서 정말 대단한 게임이라고 생각했지만, 탄생 비화는 수호지를 보는 듯 하다.

2010년 11월 6일 토요일

시화방조제 드라이브

방조제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오다 좌회전을 하면 바다위를 달릴 수 있는 길을 만난다.

가끔씩 기분전환하러 가는 곳인데 오늘은 안개가 끼어서 운치가 있었네


차가 하나도 없다. 바닷바람에 기분이 차분해 진다.


여기가 방조제 끝인데 이 곳 맞은편에 있는 공원따라 돌면 위의 길이 나온다.



방조제에서 보는 바다는 뻘이다


아까 바닷길 코스의 마지막. 육지랑 이어지는 곳
안개 때문에 을시년스럽다.

코스는 아래와 같다



오늘길에 삼식랑 쪼랑 소래포구에서 만나 회 한접시하고 집으로 ^^

가을이 끝나갈 즈음에

출근길에 그냥 한 컷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언니네 이발관 월요병 콘서트

올 해도 어김없이 하는구만
이번엔 새 앨범 작업 때문에 한번밖에 못한다네
그래서 특별히 마련한 야외특설 무대,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 옆에 호숫가
하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대략 난감




















담요랑 핫팩을 줬지만
나는 언제나 처럼 혼자라 추운건 어쩔 수 없었다.
이발관 공연은 누구랑 딱 한번 같이 가 봤었지 ^^ (아주 오래전 이야기, 아마 내가 20대였을거야)

얘네들은 항상 미숙하고 삑사리내고
능룡이는 언제 기타가 더 늘까? 메인 기타가 박잘 못 맞춰 ㅋㅋㅋ
이석원씨는 그래도 기타에 연륜이 느껴 지더라...
그래도 여전히 노래는 어눌해 ^^;
몇 년 전부터 건반 치던 아가씨 (이름은 맨날 까먹어)는 갑자가 화장실 가서 ㅋㅋㅋ

뭐 그게 이발관의 매력이지

올 해는 다른 해랑 다르게 정시에 마치지도 (앵콜같은거 막하고 이 냥반이 마흔이 되더니 으음), 
앉아서 조용히 듣고 있지도 않았지만,
깊어가는 가을 저녁 좋아하는 소리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속리산

저번주에는 속리산에 갔네

설악산 보다 더 큰 불상이 있어서 한 컷 ^^
우리나라는 산에 가면 항상 절이 있어 ㅡ.,ㅡ


문장대를 정ㅋ벅ㅋ 한 후 ...
학교 다니던 시절 올라 갔을 땐 갈만 했는데, 아~ 이번엔 정말 힘들었다.


단풍은 이정도...
한창 색이 예뻤다. 역시 가을은 단풍이야 ^^

여기도 멋진 곳 중에 하나

속리산 가는 길에 국도 변에서 만난 예쁜 은행나무 길
연인이 생긴다면 다시 한번 꼭 같이 걷고 싶은 길이었다.
저 밴치에 앉아서 호수를 한참 바라보다 속리산 도착시간이 늦어져서 힘들었다. ㅎㅎㅎ

2010년 10월 21일 목요일

설악산

며칠 전에 설악산을 다녀왔다




가는 길에 한적한 마을 한 컷
이런 델 보면 아둥바둥 살아 무엇하누 싶다.



속초에서 본 바다
속초에 왔을 때 저정도 시간이 흘러서 하루밤을 묵어야 했다.
저녁이 될 때까지 저곳에 있었는데, 오랫만에 저녁이 되어가는 바다를 바라다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당시 설악산 단풍, 단풍은 아직이었다.
설악산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는데
혼자 왔다니까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 케이블카를 바로 타게 해 주더군. 쩝
좋긴한데 뭔가 서글펐다.



뭐 불상도 하나 있길래 찍어 봤네 ^^;

오랫만에 바람 쐬고 와서 상쾌!